
췌장암은 치료가 어렵고 예후가 좋지 않은 암 중 하나로, 5년 생존율이 15.9%에 불과하다. 더욱이 전체 췌장암 환자 중에서 수술이 가능한 경우는 20% 정도밖에 되지 않아, 많은 환자들이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세브란스병원 김만득·권준호 교수팀이 수술이 어려운 췌장암 환자들에게 비가역적 전기천공(IRE, Irreversible Electroporation) 치료를 적용해 생존 기간을 최대 9개월 연장시켰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IRE 치료, 어떻게 작동할까?
IRE 치료는 고전압 전기를 활용하여 암세포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기존의 고주파 열치료(RFA)나 마이크로파 치료(MWA)와 달리 열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주변 조직이나 혈관 손상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치료 과정에서는 암 조직 주변에 전극을 삽입하고, 약 3000V의 고압 전기를 흘려보내 세포막에 미세한 구멍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암세포가 사멸하게 되고, 이후 인체 면역계가 활성화되어 추가적인 암세포 공격까지 가능해진다. 즉, 단순히 종양을 제거하는 것을 넘어 면역 반응까지 유도하는 효과를 가진다.
IRE 치료의 가장 큰 장점은 종양이 주요 혈관이나 중요한 장기와 가까운 위치에 있어도 시술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췌장암의 경우 주요 혈관과 가까운 경우가 많아 수술이 어렵지만, IRE는 혈관 손상 없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어 새로운 치료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연구 결과: 생존 기간 연장
김만득·권준호 교수팀은 13명의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IRE 치료를 시행했다. 연구 결과, 기존 치료법을 받은 환자들의 평균 생존 기간이 11~12개월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 IRE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시술 후 평균 생존 기간은 20.7개월로 증가했다. 또한, 진단 후 평균 생존 기간도 기존 치료보다 26개월 이상 늘어난 43.9개월로 나타났다. 이는 기존 치료 대비 상당한 연장 효과를 보인 것이다.
이 연구는 오는 30일 미국 내슈빌에서 열리는 인터벤션 영상의학회(SIR 2025)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췌장암 분야에서 의미 있는 연구 결과로 평가되며, 앞으로 더 많은 연구를 통해 치료 효과가 검증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의료기술의 발전: 더스탠다드 EPO 시스템
이번 연구에서는 국내 의료기기업체 더스탠다드(The Standard)의 EPO(Electroporation) 시스템이 사용되었다. 김만득 교수는 해당 장비 개발에도 직접 참여하여 시술 효과를 높이고, 기존보다 치료 시간을 절반 이상 단축하는 데 기여했다.
일반적으로 췌장암 치료에서 외과적 수술을 진행할 경우 입원 기간이 길고 회복도 오래 걸리지만, IRE 치료는 배를 열지 않고 최소 침습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술 후 퇴원까지 약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IRE 치료의 한계와 향후 과제
김 교수는 IRE 치료가 모든 췌장암 환자에게 효과적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종양이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거나, 크기가 너무 큰 경우에는 치료 효과가 감소할 수 있다. 또한, 연구에 참여한 환자 수가 아직 적기 때문에 후속 연구를 통해 효과를 더욱 입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만 보더라도,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항암치료 효과가 낮아 다른 치료 옵션이 없는 환자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기존 치료법으로는 생존 기간을 충분히 연장하기 어려웠던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의 기대
췌장암은 조기 발견이 어렵고 치료 방법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치료법 개발이 절실한 분야다. IRE 치료는 기존의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치료와 함께 적용될 경우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추가 연구를 통해 환자들에게 더욱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 옵션이 제공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국내 연구진과 의료기기 업체가 협력하여 개발한 기술이 글로벌 무대에서도 인정받는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와 임상 시험을 통해 더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